볼리비아 우유니의 소금사막은 내가 남미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기대했던 곳 중 하나였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봤던 파란 하늘, 흰 구름이 데칼코마니처럼 고스란히 물 위에 반사된 장면은, 마치 천국이 있다면 이 곳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했다. 


바로 요런 사진들? 더 멋진 사진들이 많지만, 무단으로 쓸 수 있는 위키피디아 사진만 골라오다보니. @위키피디아



라파스에서 출발하는 밤 버스를 타고 우유니에 새벽 5시30분쯤 도착했다. 그 작은 도시에 한국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보통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정말 재밌거나 하면 그 곳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우유니는 특유의 몽환적인 풍경과 함께, 일종의 ‘액티비티’ 경지에 오른 ‘인생샷 건지기’ 덕분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 중 하나가 됐다. (실제로 소금사막으로 가는 길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자기 나라 국기를 꽂아놓은 장소가 있는데, 태극기 숫자가 제일 많다) 


@정유진



우유니 소금사막은 아주 먼 옛날, 바다가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 후, 비가 적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은 모두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아 형성된 것이다. 우기인 12~3월에는 20~30㎝의 물이 고여 얕은 호수가 만들어지는데, 이 물이 거울처럼 투명하게 반사되면서 하늘과 땅이 일체를 이루어 장관이 연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샷을 건지려면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물이 적당히 고여 있는 맑은 날씨(물이 너무 많아도 안된다. 지프차가 사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멋진 사진을 찍어줄 센스있는 가이드, 재밌는 단체사진 포즈를 함께 취해줄 죽이 맞는 팀원들. 


‘나홀로 여행자’인 나는 버스 터미널에서부터 한국인이 보이면 무조건 달려가 ‘우유니에서 같이 투어를 하자’고 말을 붙였지만, 대부분 이미 팀이 짜여져 있는 사람들이었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을뿐더러, 한국인들처럼 사진에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일단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브리사 투어’로 갔다. 남미여행 단톡방에서 ‘호다까 투어’가 더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딱 한번 뿐인 기회에 모험을 하기는 싫었다. 


그러나 결국 ‘브리사’를 택했던 것은 큰 실수였음이 나중에 드러났다. 예상치 못하게 라파스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한국인 일행과 여기서도 같은 투어팀으로 묶인 거다. 다시 마주친 그들은 딱히 나를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날 서로 대판 싸운 모양이었다. 자기들끼리 말도 별로 안하고, 싸한 분위기 조성하면서 단체샷도 찍지 않고 차에만 앉아있다. 게다가 그들은 우유니에 며칠동안 머물면서 선라이즈 투어까지 이미 마친 상황. 사진은 찍을만큼 다 찍은 상태였다. 그러나 데이투어와 선셋투어만 하고 바로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하는 나로선 그게 마지막 기회였는데.ㅠ 


아쉬운 대로 찍은 사진들. 사막에 놓인 기차, 중간의 선인장 마을. @정유진



게다가 12월 우기인데도 비가 거의 오지 않아서 하늘과 뭉게구름을 반사시켜 줄 물(!)이 없었다;;; 볼리비아에 점점 가뭄이 잦아지면서 소금사막에 물이 부족해지고 있다더니 사실인가보다. 그래서 우유니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가이드들의 능력 여부는 넓디 넓은 소금사막 속에서 물 있는 곳을 얼마나 잘 찾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가이드가 사진을 잘 찍어준다더라’라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 한국인 여행자들이 그 가이드와 투어를 떠나려고 줄서서 대기한다. ㅎㅎ (능력있는 가이드는 양동이 물을 부어서라도 사진을 찍어준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까지..) 


나와 함께 갔던 가이드는 뜨거운 우유니 소금사막의 바람과 직사광선 탓에 얼굴이 일찍 늙어서 불과 33살인데 50살은 다 돼 보였다. 작은 인형 같은 소품을 들고 와서 이런 저런 착시 사진도 열심히 찍어주고, 풍경이 예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도 해줬다. 비록 인생샷은 건지지 못했지만 ㅠ 


아.. 한줌의 물도 없는 사막... @정유진



돌이켜보니 아쉽다. 다시 우유니에 간다면 우유니-아타카마(칠레)로 가는 2박3일 투어를 꼭 하고 싶다. 참고로, 우유니의 소금사막 투어는 모두 4가지 종류가 있는데, 선라이즈 투어(새벽에 소금사막으로 출발해서 일출을 보고 오는 것), 데이 투어(낮에 가는 것), 선셋 투어(보통 데이투어와 묶어서 하는데, 선셋까지 보고 어두워지면 돌아오는 것), 그리고 아예 지프차로 소금사막을 거쳐 아타카마까지 가는 2박3일 투어가 있다. 

2박3일 투어는 소금사막을 잠시 들른 후 바로 황량한 진짜 사막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최대한 소금사막에 오래 머물며 ‘인생샷’을 건지려 하는 여행자들에게 별 메리트가 없다고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사막의 밤에서 쏟아질 듯한 별은 물론 은하수의 장관까지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더라. 

 

남미여행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동기가 우유니의 소금사막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 곳이 됐다. 그러나 여행이 뭐 언제나 기대되로 되는 건 아니니까. 무릇 여행이란 원래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 아니던가. 


나중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라는 책을 우연히 집어들고 읽다가, 그 책의 저자가 우유니를 묘사한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우유니를 원망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소금사막이 만들어지는 1억년 동안 공룡이 사라졌으며, 인류가 생겨났다. 나는 소금사막을 내 카메라에 담으면서, 허무함 뒤로 밀려드는 억겁의 인연을 생각했다. 소금사막을 만나기 위해 박민우라는 인간은 서른 세 살을 못 견디고 한국을 떠났으며 이 땅은 꾸준히 바다를 벗어나 땅으로 땅으로 솟구쳤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지프가 뒤집히지도 않았다. 변심해서 내가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이 곳이 온난화로 모두 녹아버리지도 않았다. 

새로운 곳을 만나는 인연의 깊이. 나에게 주어진 70년 정도의 인생. 그 안에 허락된 인연은 얼마나 될까. 

뒤늦게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영원할 것 같던 바다가 사라지고 소금만 남았듯이 지구상에 불멸은 없다. 이 일렁이는 소금도 언젠가는 바다가 되거나 흙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보여지는 순백의 기적에 진심으로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내가 본 우유니의 하얀 소금사막은 그런 '억겁의 기적과 인연'을 거쳐 만난 곳이었다.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을 느낄 시간에, 내가 본 것의 위대함에 감사해야 하는 것. 그게 진짜 여행자의 자세란 걸 깨닫게 됐다.  (2015.12)

Posted by 정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