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날짜로 업로드할 수 있는 기능이 사라졌네요;; 뜬금없지만 1년 지난 미국 연수기를 뒤늦게 올립니다. 이 연수기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제출한 분기별 소감문입니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는 해마다 6천만명이 넘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은다. 한국 전체 인구보다도 많은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들의 목적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디즈니월드다.


겨울방학을 맞아 올랜도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디즈니월드를 다녀왔다. 연수기에 무슨 테마파크 방문 소감까지 쓰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서의 나흘은 나에게 감탄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 테마파크에 가본 기억이 까마득하긴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도 한국의 00랜드, 00월드의 놀이기구에는 주제의식이 없다. 바이킹을 타면서 진짜 바이킹이라고 여길리 만무하고, 청룡열차인 <후렌치 레볼루션>을 타면서 프랑스 혁명을 떠올리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저 그것들은 깜짝 놀랐지? 무서웠지? 재밌었지?”란 목적에만 충실하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재현된 다이애건 앨리에서 아이들이 해리포터가 된 것처럼 마법 지팡이를 휘둘러보고 있다.



그런데 디즈니와 유니버셜의 놀이시설들은 컨셉트와 주제의식이 매우 명확하다. 예를 들면 디즈니월드 엡콧(Epcot) 파크에 있는 미션 스페이스는 우주비행사 트레이닝 과정을 주제로 잡았다. 바이킹이나 청룡열차처럼 뒤집어지고 붕 뜨고 하는 것은 똑같지만 그것들에는 우주비행사가 된 내가 우주선 안에서 화성을 향해 가는 도중 경험하는 과정이라는 맥락이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똑같은 청룡열차라 하더라도 내가 직접 디자인한 선로를 달리는 체험을 해보거나, 자동차를 직접 디자인해 본 후 실제 시속 100km의 속력으로 달리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어트랙션도 있다. , 대부분의 어트랙션이 순간의 깜짝 즐거움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즐거움이 결합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놀이기구를 통한 체험이 실감나 봤자지라고 여기기 쉽지만, 3D 기술이 뒷받침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3D 화면의 깊이감 덕분에 미션 스페이스의 경우 실제 우주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고,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해리포터와 마법의 성어트랙션은 빗자루를 타고 해리포터와 함께 하늘을 나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볼드모트가 나를 향해 지팡이를 쏘면 그 번개가 진짜 나를 향해 날라오는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게 될 정도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있는 호그와트 열차. 이 열차를 타면 다이애건 앨리에서 어드벤처 아일랜드에 있는 호그스미드로 넘어간다.



한국도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닐텐데. ‘후렌치 레볼루션같은 뜬금없는 놀이기구 말고 이름과 주제가 명확히 일체하는 3D 체험형 기구를 만들면,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간접체험 기회도 선사하면서 좀더 많은 입장객을 끌어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유니버셜과 디즈니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한 가지는 휠체어다. 한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을만큼 많은 휠체어(물론 유모차도)들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웬만한 곳에는 모두 턱이 없고 승강장 사이가 넓은 곳에는 직원이 잽싸게 달려와 나무판을 깔아준다. 가이드맵에는 놀이시설마다 휠체어 장애인의 이용 가능여부가 표시돼 있는데, 상당수는 가능하다.


의아하게 여겨졌던 것은 휠체어를 탄 사람들 대부분이 기력이 쇠한 노인들이란 점이다. 어린 손주와 온 노인들도 있지만, 늙은 노부부가 둘이 온 경우도 많았다. 빨리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천천히 밀고간다. 디즈니월드를 즐기는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노인들.


생각해보면 그들이야 말로 디즈니 캐릭터의 진정한 친구들이다. 그들이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1930~1940년대는 디즈니가 가장 센세이셔널한 전성기를 맞았던 시절이다. 놀거리도, 볼거리도 없던 그 시절, 이 노인들의 꿈과 환상은 온전히 디즈니의 몫이었을 것이다.


디즈니월드의 퍼레이드. 팅커벨 뒤로 신데렐라 성이 보인다.



디즈니 매직킹덤에서 야간에 신데렐라성 위로 폭죽이 쏟아지면 그 광경을 보고 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잘은 몰라도 그 심정이 짐작은 간다. 나는 이렇게 나이가 들고 세파에 찌들었지만, 내 어린시절의 꿈과 환상은 이렇게나마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있었구나, 하는 심정 아닐까.


한국의 어린이들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됐을 때, 도대체 무엇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꿈과 환상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니, 그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줄 대상이나 장소가 존재하기는 하는걸까

Posted by 정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