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카이스트에서 넉 달 동안 학부생 4명이 연달아 자살해 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긴 적이 있었다.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카이스트의 학사제도 등에 연일 거센 비판이 쏟아질 무렵, 한 교육 월간지에 실린 글을 읽게 됐다. 사회학자 엄기호씨가 카이스트 사태에 대해 여러 대학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쓴 ‘동시대인의 죽음’이란 글이었다.


“무한경쟁으로 인한 ‘모욕감’은 대학서열체제와 상관없이 모든 대학생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인 만큼, 그가 만난 학생들 대부분은 자살한 카이스트생에게 ‘동시대인’으로서 공감을 표했다. 그런데 그중 한 지방대생은 조금 다른 고백을 했다.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내 주변에는 카이스트는커녕 연·고대 다니는 친구도 한 명 없다. 내가 이 사건과 엮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리 사회가 학벌과 계층에 따라 분할되는 ‘칸막이 사회’가 돼 가고 있다는 것은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칸막이가 얼마나 어릴 때부터 촘촘히 형성되는지에 대해선 그전까지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왜 그 학생은 카이스트·연대·고대생과 자신 사이에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고 느끼게 된 걸까. 중·고등학교 동창 중 소위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한 친구가 한 명도 없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중·고등학생들의 교우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전국 단위 자사고를 나온 서울대생과 일반고를 졸업한 지방대생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서울대 안의 한 카페에서 전국 단위 자사고 출신인 김현수씨(가명·당시 19세)를 만났다. 그는 당시 친한 친구들과의 인연이 중3 때 다닌 서울 목동의 한 유명 입시학원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시험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그 학원의 ‘자사고 및 특목고 준비반’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내로라하는 소수 정예 학생들로 구성됐다. 그는 학원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자사고에 진학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엔 친한 고교 동창이자 서울대 입학 동기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유명 자사고나 특목고 학생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그룹 짓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에 동의했다. “고등학교 밴드부끼리 가끔 합동공연을 하거든요. 그런데 참가 학교를 보면 다 외고·국제고·자사고예요. 일부러 일반고를 배척하려고 그랬다기보다는 서로 아는 친구들이 거기서 거기다 보니 결국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반면 부산지역의 한 일반고를 나와 부산에 있는 지방대로 진학한 이수정씨(가명·당시 22세)는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 대부분이 지방대나 전문대생이라고 말했다. 고1 때 수준별 보충반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 ㄱ씨는 서울의 2년제 전문대를 졸업한 후 어린이집 교사로 취업했다. 친구 ㄴ·ㄷ씨는 고3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도시락을 함께 까먹으며 친해진 사이다. 이들은 이씨와 마찬가지로 부산에 있는 또 다른 지방대에 진학했다.


이씨는 같은 반 친구 중 포항공대나 카이스트에 진학한 아이들도 있지만, 그들과는 상대적으로 함께 공유한 추억이 많지 않다고 했다. “걔네들은 보충학습도 ‘SKY반’에서 따로 받았고, 야간자율학습도 공부 잘하는 애들만 들어갈 수 있는 별도의 정독실에서 했어요. 공간이 분리되니까 자연스럽게 친구 그룹도 성적에 따라 나뉘는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6년 전 취재수첩을 다시 펼쳐든 이유는 짐작했겠지만, 최근 다시 쟁점이 된 특목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문제 때문이다. 사실 옛날에도 전교 1등과 전교 꼴등이 단짝 친구가 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그때는 모두가 ‘동급생’이란 동질감만큼은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대학 서열화도 모자라 고등학교는 특목고와 자사고, 일반고로 나누고, 중학교도 일부 학교는 일찌감치 수준별 이동식 수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학제 시스템은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성적순으로 ‘끼리끼리’ 헤쳐 모이게 만들고, 기성 사회의 잘못된 칸막이 구조가 아래로 확산되는 효과를 더욱 강화한다. 6년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 이름이 아이를 분류하는 꼬리표가 돼 버렸다.


일각에선 특목고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하향평준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하는 것은 중·고교 시절부터 비슷한 배경의 친구들에게만 둘러싸여 자라난 소수의 ‘인재’가 한국 사회 전체를 좌우하는 것이다. 이미 법조계에서는 신규 임용되는 판검사 중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교과서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돌파를 달성해 줄 싹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곳도 아니다. 학교의 1차적 존재 이유는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낼 줄 아는 ‘좋은 시민’을 키워내는 것이다.  (2017.07.04)

Posted by 정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