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학기 만에 대학을 겨우 졸업한 나는 그 후 2년 가까이 ‘취준생(취업준비생)’이었다. 다시 말해, 백수였다. 처음 1년은 번번이 서류에서 탈락했다. 다음 해에는 필기와 면접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언론사 입사는 원래 경쟁이 치열한 것 아니냐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당시 내 ‘스펙’으로 일반기업 입사는 더욱 어림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순서로 면접을 보고 나온 후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친 한 면접관은 이렇게 말했다. “요새 취업 어렵죠? 고생 많겠네.” 노련한 취준생은 그 ‘따뜻한’ 말 속에 숨은 행간의 의미(‘앞으로도 고생하겠네’)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아, 나는 이번에도 떨어지겠구나.


내 존재의 효용가치를 누군가의 앞에서 증명해 보이고자 안간힘을 다하는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작아지게 만든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했음에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을 때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몽땅 부정당한 느낌이 든다. 그런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조금씩 무뎌져간다. 현실에 단련돼 강해져서가 아니다. 수없이 밟혀 마모된 돌계단처럼, 사람의 자존감도 조금씩 닳아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때는 신입사원 채용기준에 나이제한이 있던 시절이었다. 대졸 여성은 26살, 남성은 29살. 나에게 허용된 유통기한은 끝나가고 있었다. 초조해졌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 같았다. 면접을 보고 난 후 유난히 예감이 좋았다. 이번에는 꼭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또다시 불합격 통지를 받아들었을 때,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행동을 했다. 그 회사를 다시 찾아가 면접 책임자의 사무실 문을 무작정 두드린 것이다. 


나는 내가 왜 떨어졌는지 알고 싶었다. 나름 열심히 노력해왔고, 면접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는데, 왜 나의 기대는 매번 배반당하고 마는지 딱 한번만이라도 누군가로부터 대답을 듣고 싶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보고 잠시 당황했던 면접관은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네가 부족한 사람이어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듯한 조언을 했다. “기자 말고 다른 직업 찾아보면 어때요.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거 안 좋은 직업이야.” 그분의 따뜻한 환대를 떠올리면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책없이 펑펑 울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저런 배부른 소리가 다 있나.’ 


그 후에도 몇번 더 실패의 쓴맛을 보고 난 후 나는 결국 입사에 성공했다. 가끔은 그 ‘배부른 소리’가 내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올 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지금은 그 시절을 웃으며 떠올릴 수 있을 테니 결국 좋은 경험 아니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시간이 흐르면 아무리 힘들었던 과거도 ‘그땐 그랬지’ 웃으며 회상한다지만, 지금도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결코 웃을 수가 없다. 유통기한 내에 ‘취업’이란 절체절명의 과제를 달성해내지 못하면 지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로 귀결될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아찔함과 절박함이 내 안 깊숙이 각인돼, 마들렌 향기만 맡으면 잃어버린 기억이 떠오른다는 프루스트도 아닌데,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불현듯 되살아나 그때의 감정 한복판으로 나를 데려다놓기 때문이다.


몇년 전 사석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대학생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는 내 눈치 없는 말에 5초간 말문이 막힌 듯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사실 전 대학생인 게 싫어요. 항상 불안하고 여유가 없어요. 빨리 졸업해서 직장인이 되고 싶어요.”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청춘시대>를 보다가 그 대학생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반복하느라 28세 때에야 겨우 졸업반이 된 여주인공은 이렇게 독백한다. “나는 회사원이 될 거야. 죽을 만큼 노력해서 평범해질 거야.” 죽을 힘을 다해 대학에서 버텨낸 그의 꿈은 오직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것, 취업이었다. 요즘 돈이 없는 취준생들은 대용량 냉동식품 같은 ‘인간사료’를 먹으며 하루를 버틴다고 한다.


그런데도 취업난 기사에는 “눈높이를 낮추라”는 댓글들이 달린다. 눈높이를 낮춰 계약직이나 파견직으로 취업하면 2년마다 다시 취준생 신세로 도돌이표를 찍게 되고, 고3 학생이 살인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취업 2개월 만에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진다. 그러니 합격률 2%도 안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 해마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 ‘청년수당’ 논란이 벌어졌을 때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인 복지 늘리기도 예산이 모자랍니다. 청년은 하다못해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현실에 비춰볼 때 너무 한가한 문제인식이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란 노래 가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채용기준에 연령제한은 없어졌지만, 청춘 그 자체가 통째로 ‘아무도 집어 들지 않는 통조림’의 유통기한처럼 돼버린 시대다. (2017.04.04)



Posted by 정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