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처음 국제부에 배치됐을 때 국제뉴스에 아무런 감이 없던 나는 야근할 때마다 초긴장 상태였다. 좀 더 무시무시한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그때 ‘바그다드에서는 사람이 얼마만큼 죽어야 뉴스가 되는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부장, 방금 차량 폭탄으로 사상자가 열몇명 발생했다는데 이거 써야 할까요?” 다급히 묻는 나에게 부장은 말했다. “바그다드에서는 매일같이 그렇게 사람이 죽고 다친단다.”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고, 가벼운 죽음은 없다. 그러나 더 이상 세간을 놀라게 하지도, 충격을 주지도 못하는 죽음은 있다. 웬만한 규모가 아니라면 이젠 주목조차 받기 어렵게 된 죽음들. 날마다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언론은 너무 자주 반복되는 일, 한 단어로 바꾸자면 ‘일상’을 매일같이 다루기 어렵다. 아마 바그다드에서 한달 동안 폭탄 테러가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뉴스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죽음의 일상화’라고 부른다. 반복된 죽음이 쌓이고 쌓이다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한명씩 더 죽을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오히려 반비례하는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그 이후 추가되는 ‘숫자’는 죽음에 대한 익숙함과 기시감, 그렇게 될 때까지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고 그래서 앞으로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무기력함만 확인시켜주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부로 자리를 옮긴 나는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다시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전쟁과 테러 같은 거대한 비극만이 ‘죽음의 일상화’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어도 공장에서, 타워크레인에서, 지하철역에서, 전신주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현장 노동자의 죽음이 임계치를 넘어설지도, 아니 어쩌면 이미 넘어섰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다. 



지난 18일 경기 평택 아파트 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서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했다. 타워크레인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올해만 모두 19명. 정부의 타워크레인 종합대책은 15명의 목숨이 끊어진 후에서야 나왔다. 그마저도 이후 4명의 목숨을 살리는 데 실패했다.


그로부터 이틀 전인 16일에는 경기 김포시 건축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겨울철 콘크리트가 얼지 않도록 갈탄을 피워 양생작업을 하다가 질식해 숨졌다. 3.6m 지하 맨홀에서 상수도 작업을 하던 노동자 1명이 산소 부족으로 사망한 지 불과 넉달 만에 비슷한 죽음이 반복됐다.


그로부터 또 이틀 전인 14일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온수역에서 선로 배수로 작업을 하던 일용직 노동자가 달리는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지난 6월 노량진역에서 선로작업을 하던 정비사가 열차에 치여 숨진 후 고용노동부는 온수역을 포함한 ‘위험구간’에서는 열차운행 중 선로작업을 해선 안된다고 작업중지명령을 내렸지만, 그 명령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전날인 13일에는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설비 정기보수를 하던 노동자가 갑자기 작동하기 시작한 설비에 끼여 숨졌다. 이 공장은 최근 1년 새 3명, 지난 10년 동안 30여명이 산업재해로 숨진 ‘죽음의 공장’으로 불린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것은 막기 어려운 죽음과 막을 수 있는 죽음으로 나뉜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은 투입 대비 예방 가능 효과를 놓고 봤을 때 가장 막기 쉬운 죽음 중 하나다. 사측이 안전수칙을 지키고 공정속도를 늦추면 된다. 그러나 목숨값이 싼 한국 사회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펴낸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의 공저자인 최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공장에서 노동자가 작업 도중 손가락이 찢어져 작업을 중단했다가 나중에 사측으로부터 별거 아닌 상처로 지나치게 작업을 지연시켰다고 2주간 징계를 받았다. ‘몇바늘 꿰맨 상처 vs 1시간 작업중단 손실 3억3000만원’ 이런 식으로 압박한 거다. 그럼 어디까지 다쳐야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건가? 팔이 잘려야 하나? 죽어야 하나? 구의역 김군이 ‘2인1조 아니면 작업 못해요’라고 말할 수 있고, 세월호 선원이 ‘이런 식으로 화물 싣고는 못 갑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권리’가 노동자에게 보장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작업 현장에 작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작업거부권을 행사해 대피하면 사측이 불이익을 주고, 작업중지명령은 아무런 힘이 없고, 사람이 죽어도 원청과 고위 책임자는 별다른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해마다 2000여명에 달한다. 우리는 ‘산재로 누가 사망했다’는 한 줄의 뉴스로만 소식을 접하곤 한다. 그 한 줄에 담긴 무게를 쉽게 가늠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직 그 죽음들 앞에 익숙해질 자격이 없다. (2017.12.26)

Posted by 정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