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얘 게이야. 너, 이제 너가 게이라는 사실을 로그아웃(커밍아웃을 잘못 말한 것) 해버려!” 술 취한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당사자 앞에서 상대방이 게이라는 사실을 아우팅해 버린다. 이 말을 들은 엄마는 나중에 딸을 타이른다. “게이? 남자를 좋아한단 말이야? 나도 춘심이(개 이름) 키우기 전에는 개를 무척 싫어하던 사람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개고기였거든. 사람은 다 변하게 돼 있어.” 


동성애자도 ‘노오오력’하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과 성소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아우팅을 농담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룬 이 부분은 요새 시청률 급상승 중인 TV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 나온 한 장면이다. 철근을 뽑아 돌릴 만큼 어마어마한 괴력을 타고난 도봉순(박보영)을 통해 힘이 약해 차별받아온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겠다는 이 드라마의 젠더 의식은 성소수자에게 미치지 않는다.


사실 저 장면은 ‘뽀블리’란 애칭을 얻을 만큼 사랑스러운 박보영과 차진 코믹 연기를 선보이는 심혜진 덕분에 매우 유쾌발랄하게 연출됐다. 혐오의 언어에 삽입된 유머와 귀여움의 코드는 그래서 더 위험하다. 혐오를 자연스럽게 은폐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섬뜩하게 느껴졌던 대사는 이것이다. 게이인 남자 주인공이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성을 좋아한다고 착각한 도봉순은 꿈에서 둘의 코믹 애정행각을 멋대로 상상하다 깨어난 후 침대에서 몸부림치며 이렇게 말한다. “드러워, 드러워, 드러워, 너무 드러워.”


‘더럽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표현 중 하나인 이 단어는 보통 여성과 성소수자 앞에 결합해 쓰인다.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의 저자인 김현경은 이 책에서 여성을 수식하는 ‘더럽다’는 표현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 바 있다. 


“가부장제도하에서 여성은 사회 안에 어떤 적법한 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여성은 단지 스스로를 비가시화한다는 조건으로, 물리적인 의미에서 사회 안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고 있을 뿐이다.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동등한 사람으로서 사회 안에 현상하려는 순간, 이 허락은 철회된다. 여성이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사회는 여성이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잘못 인쇄된 글자처럼, 여성의 존재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말하면 여성은 장소를 더럽히는 존재로서만 사회 안에 현상할 수 있다.” 


이 분석은 성소수자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 성소수자는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떤 적법한 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가시화하고, 아무런 권리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회 안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고 있을 뿐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에서도 게이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남자 주인공이 게이라는 건 도봉순의 착각일 뿐, 사실 이성애자인 그는 도봉순과 곧 사랑에 빠질 예정이다. 생각해보면 성소수자의 현상을 허락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주말 TV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게이일 리 만무하지 않은가.


앞선 책에서 김현경은 ‘사람’과 ‘인간’, 이 두 단어는 종종 혼용되지만 다르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일 뿐이지만, ‘사람’이 되기 위해선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가장 기본적인, ‘차별받지 않을 권리’마저 보장해 주지 않는 이 사회 안에서 성소수자는 아직 사람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성적 지향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는 성소수자들이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투쟁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유독 “나는 진보이지만, 차별금지법만은 동의할 수 없다”는 댓글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평상시 환경을 보호하고, 소득불평등에 반대하고, 여성권익을 옹호해 왔다고 해서 동성애를 차별해도 될 정당성을 얻은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진보와 보수의 이념 문제가 아니었듯이, 성소수자 문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적 증거들은 성적 지향을 인종이나 성별과 같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동성애에 대해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순 있다. 그러나 ‘불편하다’는 감정과 ‘나쁘다’는 가치판단은 결코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질 수 없다. 


현재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 입장을 표명한 대권주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뿐이다. 섹스칼럼니스트 은하선씨는 “절박한 사람들에게 ‘나중에’를 외치는 사람들은 차분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 태어나고 보니 이성애자이고, 그 이성애자들이 다수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지게 된 권력. 그것은 너무 부끄러운 권력 아닌가.  (2017.03.14)



Posted by 정소군